패키지 ERP를 도입했는데 왜 엑셀이 그대로일까
ERP를 도입한 회사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시스템은 들어왔는데, 정작 일은 엑셀로 합니다." 결재는 ERP에서 올리지만 실제 계산은 따로 받은 엑셀 양식에서 하고, 그 결과를 다시 ERP에 옮겨 적습니다. 시스템이 하나 더 늘었을 뿐, 손으로 하던 일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이건 담당자가 게을러서도, 시스템이 부실해서도 아닙니다. 패키지 ERP의 구조적 성격에서 비롯되는 일입니다. 패키지 ERP는 많은 회사가 공통으로 쓰는 표준 업무를 전제로 만들어집니다. 회계, 구매, 재고처럼 어느 회사나 비슷하게 돌아가는 영역은 잘 맞습니다. 문제는 그 회사만의 일하는 방식, 즉 표준에서 벗어난 부분입니다.
패키지 ERP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
패키지 ERP의 한계는 보통 다음 세 곳에서 동시에 나타납니다.
첫째, 우리 회사만의 예외 처리입니다. 거래처마다 다른 단가 규칙, 특정 고객에게만 적용하는 할인 구조, 부서별로 다르게 잡는 원가 기준 같은 것들은 표준 화면에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엑셀로 빠져나옵니다.
둘째, 화면과 보고서의 형태입니다. 경영진이 매주 보고 싶어 하는 지표가 ERP 기본 리포트로는 안 나옵니다. 결국 데이터를 내려받아 엑셀에서 다시 가공합니다. 데이터는 ERP 안에 있는데 그걸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보는 일은 시스템 밖에서 일어납니다.
셋째, 시스템 사이의 빈틈입니다. ERP, 그룹웨어, 외부 거래처 자료, 공공기관 신고 양식이 서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한 시스템에서 꺼낸 값을 사람이 다른 시스템에 다시 입력하는 작업이 매일 반복됩니다. 이 옮겨 적는 일이 쌓일수록 엑셀과 수작업은 줄지 않습니다.
보안 정책으로 확대가 제한됩니다
커스터마이징과 맞춤개발은 다릅니다
패키지 ERP도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합니다. 다만 커스터마이징은 정해진 틀 안에서 항목을 켜고 끄거나 값을 조정하는 수준입니다. 우리 회사의 일하는 방식 자체가 표준과 다를 때는 그 틀 안에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무리하게 패키지를 뜯어고치면 버전 업그레이드 때마다 손본 부분이 충돌하고, 유지보수 비용이 오히려 커집니다.
맞춤개발은 접근이 다릅니다. 우리가 실제로 일하는 흐름을 먼저 보고, 그 흐름에 맞는 화면과 로직을 만듭니다. 표준에 우리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에 시스템을 맞추는 방향입니다.
언제 맞춤개발을 고려해야 할까
모든 회사가 맞춤개발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계나 표준 업무 위주라면 패키지가 더 빠르고 안전합니다. 다음과 같은 신호가 겹친다면 맞춤개발을 검토할 시점입니다.
- ERP를 쓰는데도 핵심 업무 엑셀이 사라지지 않고, 그 엑셀이 회사의 진짜 노하우를 담고 있을 때
- 같은 데이터를 사람이 시스템 사이에서 반복해서 옮겨 적고 있을 때
- 패키지 커스터마이징 견적이 계속 늘어나는데도 정작 필요한 화면은 못 만들 때
- 우리만의 업무 규칙이 경쟁력의 핵심이라, 표준에 맞추면 강점이 사라질 때
저희가 일하는 방식은 패키지를 무조건 걷어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표준 영역은 패키지에 맡기고, 표준에서 벗어나 엑셀로 새어 나가는 부분만 맞춤개발로 메우는 접근이 비용과 효과 면에서 가장 현실적입니다. 먼저 어느 업무에서 엑셀이 안 사라지는지부터 함께 짚어보면, 맞춤개발이 필요한 범위가 분명해집니다.



